의사와 죽음의 신

옛날, 에스파냐의 어느 곳에 신기료 장수가 있었습니다.
신기료 장수란 헌 신을 깁거나 고쳐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발을 고쳐주고 버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으로는 일곱이나 되는 아이와 아내 등 아홉 식구가 먹고살기엔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태까지 배불리 먹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신기료 장수는 자기의 불행을 뼈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연장을 팔아 그 돈으로 쌀과 고기와 빵, 포도주를 사서 실컷 먹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음식 준비가 다되자, 이번에는 
‘어디로 가면 조용히 먹을 수 있을까? 먹을 것을 좀 나눠 달라는 그런 귀찮은 소리를 하는 자가 없는 곳이 어딜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움집이 생각났습니다.
다음 날, 신기료 장수는 광주리에 음식을 가득 담아 가지고 움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여기에 들어있는 먹을 것들은 절대로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 단 한 번만이라도 배불리 먹어 보고 싶어. 실컷 배가 불렀을 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느껴본  일이 없으니까.”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에게 말했습니다
“저것 보십시오, 산밑에 있는 움집으로 들어가는 저 가련한 사나이를! 저 사나이는 지금 자기가 자지고 있는 먹을 것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다면서.......”
이것을 듣고 예수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런들 그럴 리가 있겠나?”
“정말입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자네가 가면 설마 아무 것도 안 주지는 않겠지? 자네가 한번 가보게나.”
그래서 베드로는 거지같은 차림으로 그 곳으로 갔습니다.
움집 안에서 베드로가 오는 것을 본 신기료 장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누구야,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올 테면 와. 올 때와 같이 빈손으로 돌아갈 테니...”  
베드로가 움집의 문 앞에 와서 간청했습니다.
“아무거나 좀 적선해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신기료 장수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습니다.
“적선하라고? 그런 쓸데없는 소린 말아요. 여태까지 내게 무엇을 베풀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답니다”
“그렇다면 잘 듣게, 나는 베드로야”
“당신이 예수님이라 해도 줄 수 없소. 지금까지 내게 무엇을 베풀어 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빨리 돌아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베드로는 돌아와서 예수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놀라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보자 그러면 무엇을 좀 나눠주겠지”
이렇게 말하고 예수는 죽음의 신을 불러서 보냈습니다. 죽음의 신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거지 차림으로 갔습니다. 신기료 장수는 죽음의 신이 오는 것을 보자 소리쳤습니다.
“아니, 또 다른 놈이 오는구나! 무슨 소릴 해도 안 된다.”
이윽고 죽음의 신은 신기료 장수가 있는 곳으로 와서 적선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신기료 장수는 아까와 마찬가지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신기료 장수는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는 죽음의 신이외다”
“아. 그렇다면 당신은 내 친구입니다. 내 옆에 앉아서 같이 먹읍시다.”

죽음의 신은 신기료 장수 옆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 먹고 기분이 좋아진 죽음의 신은, 맛있게 먹은 사례로 신기료 장수를 도와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매우 친절히 대해 주었습니다. 무엇이고 당신에게 보답할 생각이니, 소원이 있으면 이야기하시오.”
신기료 장수는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앞으로의 생활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신이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면 하는 수 없습니다. 그럼 내가 말하기로 하지요. 당신은 의사가 되시오.”
“그런 농담은 그만 두시오. 아는 병에 대한 일이나 약에 관한 일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의사가 되란 말입니까?”
“그런 것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자, 들어보시오. 우선 당신이 해야할 일은, 중한 환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환자가 부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면 처음에 환자를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굉장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는 사이에 당신은 아주 유명해 질 수 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당신은 곧 명의라는 소문이 처질 것이고, 따라서 그 만큼의 사례도 듬뿍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 참 좋군요. 그러나 어떻게 약 처방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잖아요?”
“아니, 그런 걱정은 말아요. 당신은 다만 환자만 찾아다니며, 내가 환자의 어느 쪽에 있는가를 주의해서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만일 환자의 오른쪽에 있으면, 그 가족에게 ‘환자는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환자의 왼쪽에 있으면, ‘환자는 낫기가 힘들며, 아마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시오. 이것은 절대 틀리는 일이 없지요. 내가 환자의 오른쪽에 있으면 결코 그 환자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당신의 진찰이 맞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들 당신을 훌륭한 의사라고 신용하게 될 것입니다.

신기료 장수는 죽음의 신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곧 의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처음 찾아간 환자는 백작이었는데, 지금까지 그의 병을 본 사람은 모두 가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죽을 것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료 장수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 집에 가서.
“댁에는 매우 위독한 환자가 있다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다 그 집의 하인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위독한 상태입니다.”
“좀 볼 수 없을까요?”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런 소리 마시오. 나는 병을 볼 줄 아는 의사입니다. 물론 불러서 온 건 아니지만, 환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하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백작 부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인의 허락을 받고 병실에 들어간 신기료 장수는 죽음의 신이 분명히 환자의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럴 듯하게 환자의 맥을 짚어보고, 양쪽 옆구리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곧 보리수 꽃을 달여 뜨거운 차를 만들어 환자에게 마시게 하고, 닭국을 끓여 먹게 하시오.
내일 11시나 12시쯤에 환자를 일어나게 해서 의자에 앉히고, 식욕이 있다면 무엇이건 먹을 걸 드리시오. 잘 소화하면 2시쯤에 다시 침대에서 쉬도록 하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내일 다시 한번 찾아오지요 이 치료로 얼마쯤 차도가 있는지 없는지 보기로 합시다.
가족들에게는 이 말이 엉터리 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놀리는 것으로 생각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가르쳐준 방법이 환자를 나쁘게 할 것 같지 않았고, 또 환자가 그것을 바랐으므로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보리수꽃을 달인 더운 차를 마시게 하고 때때로 들여다봤을 뿐, 환자를 방 안에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백작은 아주 좋아져서 무엇을 먹고 싶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것을 본 부인은 환자를 일어나게 한 다음, 닭국을 끓여 닭의 연한 가슴살과 날개죽지 고기를 먹였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마치 배고픈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기뻐하먀 그것은 다 먹었습니다.

의사가 찾아왔을 때, 백작은 벌써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백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덕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다시 꼼꼼히 진찰한 다음 말했습니다
“이제는 걱정 없습니다. 내일부터는 아주 완쾌될 겁니다.”
백작은 과연 완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사례를 얼마나 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아닙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다만 의사로써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백작은 의사의 그 훌륭한 인품에 놀라서 천 페세타짜리 지폐가 여러 장 들어있는 지갑을 내주었습니다

신기료 장수가 이렇게 의사 노릇을 하며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때.
불쑥 죽음의 신이 나타났습니다.
“자아 갑시다. 이미 당신은 세상의 온갖 행복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뭐라고요?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나를 데리고 간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미 시간이 다 됬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 한가지 소원을 들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거의 당신의 일이나 하느님의 일을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드리기 위해 조금만 더 살게 해줄 수 없습니까? 그저 ‘우리의 주!’하고 한마디만이라도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들어주지요”
신기료 장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주여!’ 하는 데까지 왔을 때,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 년이다. 이 기도가 끝나려면 백 년은 걸릴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간을 끌며 좀처럼 기도를 끝마치지 않자, 죽음의 신은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신은 신기료 장수가 자기를 한바탕 곯린 데 대해, 어떤 수를 써서든지 그를 혼내 줄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의 신은 신기료 장수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목을 달아매고, 죽은 사람처럼 매달려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 곳을 지나가던 신기료 장수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구종에게 차를 멈추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저게 뭐야?”
“어이구, 주인님! 목 맨 사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사나이를 위해 기도를 올리자”
의사가 ‘우리의 주여’라는 기도를 시작하자, 말구종도 뒤를 따라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기도가 끝났을 때, 목매달아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나이가, 마치 밧줄이 끊어진 듯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땅에 떨어진 사람은 놀랍게도 죽음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신은 일어나서 의사한테로 서서히 다가가, 이 세상에서 그를 영원히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남유럽 동화집]